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나 신앙 생활을 하면서 쉽게 변화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실망하거나 좌절을 경험해 보신적이 있나요? 아마도 대부분의 분들은 “물론입니다!’라고 답변하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질문을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한 번이라도 신앙생활을 진지하게 여기고 노력해 보신분들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이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향한 질책이요 좌절감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희망적인 메세지를 주시는데 바로 신앙의 선조들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한 마디로, “이미… 그러나 아직…”의 은혜인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지금 매 주일마다 나누고 있는 창세기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 가운데 야곱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면 쉽게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야곱은 이름 뜻대로 “속이는 자”로서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아 왔으며, 또한 아버지 이삭도 속이고 장자권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분노한 에서를 피해 머나먼 땅 하란으로 피신하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벧엘 광야에서 만나 주셨고 야곱은 은혜에 보답하듯이 하나님께 서원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하란에서 20년의 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거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풀리지 않은 형 에서와의 관계로 인하여 고향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결국 얍복강 강가에 홀로 남은 야곱은 밤새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스라엘” 이라는, 즉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을 만난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체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지나간 이름 “야곱”이 아닌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에 걸맞게 살아가야 하는데 과연 “야곱”이 “이스라엘”로 살아갈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대로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약속의 땅인 벧엘로 올라가지 아니하고 단지 눈에 보기에 좋은 풍요로운 땅인 세겜에서 자그마치 10년이나 머물게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이생의 자랑 가운데 살아가는 “야곱”의 모습 속에는 전혀 “이스라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았음에도 아직도 옛 모습인 “야곱”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요 앞서 언급한 “이미… 그러나 아직…”의 실체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그러나 아직”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러한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내하시면서 결국은 “이스라엘”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 바로 이러한 절대적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에 오늘도 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몸부림이 있는 것입니다. 부디 이러한 은혜를 알고 있기에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을 대할때에 판단하거나 정죄하기 보다 조금 더 인내하고 기다려주고 격려해서 함께 신앙의 여정을 끝까지 걸어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 갈망하는 자 김태훈 목사 올림